여산파는 왜 정명파와 동일하지 않은가?

원창 시청도경 2018-05-07
정명과 여산은 모두 허진군을 조상으로 하지만, 정명은 도교에 속하고 여산은 무교에 속한다.
《해경백진인어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원장께서 물으셨다: 무법이 있습니까? 그 정과 사악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답하길: 무자의 법은 사탄왕에서 시작하여 판구왕에게 전해지고, 다시 아수라왕에게 전해지며, 다시 위타시왕, 장사왕, 두타왕에게 전해지고, 여산은 여주 구랑에 있으며, 몽산 칠랑, 횡산 십랑, 조후 삼랑, 장조 이랑이 있으며, 그 이후로는 알 수 없다. 예전의 무인의 법 중에는 판구법이라는 것이 있고 또 영산법이라는 것이 있으며 다시 문산법이라는 것도 있는데 사실 하나의 무법이다.’ 그래서 송대의 여산은 순전히 무교였고 이후 천 년의 발전을 거쳐 보완과 마오산(마여 이동), 횡산, 요가(요가 밀륜원 또는 요가 대법사), 오적(金강원) 등의 내용을 통합하여 형식적으로 도교와 비밀교에 가까워졌다. 일부는 높은 도교화된 내용이 도교 의식과 기본적으로 일치하지만 여전히 법문의 소속인 소뿔과 스승의 칼 등의 내용을 보유하고 있다.
 
정명파는 전승에 따르면 《정명충효전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유장 지역에는 고仙인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허공징양이라 하며 그의 가르침도 충효를 말한다. 그는 오나라 적오 중에 태어나 진나라 태강 때 136세로 세상을 떠났다. 어찌 사람사의 관찰과 세상의 변화를 보고 이러한 논의를 하였겠는가. 양생 기복의 집에서 천 년 이상 전해졌으나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또 서산 도사 황중황에게서 유진 유군과 허공신 교류 사건이 매우 다르다. 그래서 허공의 충효설을 유가에서 본받아 그 정통성을 지키고 도가로 나아가 신을 추구하였다. 그의 책이 나온 지 또한 몇 년이 되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였다.’ 따라서 장사망이나 두타왕의 전승과 차이가 있다.
 
신앙 내용으로 보면 먼저 정명의 두 글자의 의미는 ‘더럽혀지지 않음은 정이다. 닿지 않음은 명이다. 더럽혀지지 않고 닿지 않으면 충효를 얻는다.’ 정명의 교리는 ‘정명은 단순히 마음을 바르게 하고 성실하며 충효는 단순히 강상(綱常)을 지키는 것이다.’ 모든 학도들이 ‘충효를 근본으로 삼고 마음속에서 정명이 이루어질 때 자신 마음의 천과 상천 황중도의 기혈맥이 통하게 되어 서로 감응하며 동시에 도와 합일하게 된다면 물이 바다로 돌아가는 것처럼 된다.’ 마음속에 정명이 있으면 충효를 실천하면 신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옛날 허진군이 집에서 날아올라 승천한 후 후에는 하진인이 산 속으로 들어가 숨게 되었으며 이는 모두 성선 해탈의 길이며 여산 무기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도는 이를 부호라 한다. 그래서 부호란 단순히 네 글자를 적어 놓은 것뿐이다. 원형 상징을 사용할 때 소위 원기 귀근 신력이 가장 중요하다. 어디든 가면 양도가 음도를 초월하며 해처럼 얼음을 녹인다. 만나는 것은 부수고 닿는 것은 깨뜨리며 생기가 드러나는 곳에는 간섭할 수 없다.’ 사용 방법이 매우 간단하기 때문에 또한 불교 교리나 칼을 쥐고 맨발로 걷는 여산과 다르다.
 
따라서 정명파와 여산은 동일하지 않으며 각각의 뿌리와 전승이 있으며 각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교리를 세우고 그 공덕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