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에 가장 적합한 환경

수행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

수행은 가장 힘들고 좋지 않은 환경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참을성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경계를 겪을 수록, 그것이 바로 수행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다.

*마음을 어떻게 닦아야 하나?*

출가하여 마음을 닦는다면, 마음은 어떻게 닦아야 할까? 그것은 분별심이 없는 것이며, 마음이 깨끗하면 부처가 된다. 우리는 집사로서 여러 사람과 접촉하게 되므로 서로를 분별할 수 없다.

세속인이나 출가자 모두 평등하게 대해야 하며,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바로 이 무분별한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세속인들은 이 도리를 모르고 모든 일을 좋고 나쁘게 판단하며, 선악과 사랑과 미움을 나눈다;

반면 출가자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표면적으로는 순종하며 대처할 뿐이다.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보더라도 마음에서 분별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음의 출가이다.

출가자가 하루 종일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나쁘다고 따지고 든다면, 이는 몸만 출가하고 마음은 출가하지 않은 것이다.

*마경계를 뚫어라*

수행자는 색, 소리, 향기, 맛, 촉감 및 법의 업식 속에서 해탈을 구해야 하며, 마법 없이 도를 성취할 수 없다. 부처가 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고행과 마장(마의 장애)을 겪지 않고서는 무명 번뇌를 어떻게 경험하겠는가?

수행자는 마장(심마)을 극복해야 하며 오직 마경계 속의 무명 번뇌를 뚫어야 해탈을 얻는다; 또한 색소리향미촉법을 버리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청정한 해탈을 얻는다,

그래야 비로소 보리심이 드러난다. 따라서 수행자는 마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안정된 순조로운 상황에 탐닉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발전할 수 없다.

*남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남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를 가져야 한다. 마음이 올바르면 잘못된 길로 갈까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일을 할 때마다 주저하고 남의 비판을 두려워한다면,

타인이 사사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불안해져서 의심하게 되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식견이 부족하고 의심병이 심한 사람이다.

*여섯 근본 감각 깨끗하게 하는 방법*

우리가 수행하는 것은 여섯 근본 감각이 여섯 가지 먼지와 관련하여 일으키는 분별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다. 선악과 좋은 소리 나쁜 소리 등을 분별하는 것인데 이러한 분별은 여섯 근본 감각이 깨끗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수행은 이러한 분별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며 여섯 근본 감각이 여섯 가지 먼지와 더 이상 분별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여섯 근본 감각이 깨끗해지고 다섯 스러움도 공허해진다.

*수행의 첫 단계는 마음 원숭이를 잡는 것*

수행의 첫 단계는 이 마음 원숭이를 잡아두고 자유롭게 방종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이는 매우 어렵지만 우리는 발원해야 한다. 이러한 무명으로부터 오는 습기와 죄업들을 없애기 위해,

용기를 내어 고행에 힘써야 하며 어려운 일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으려 하는 일도 해야 한다. 스스로 성취하겠다고 발원하며 신성한 신선이나 부처처럼 믿음과 이해와 실천과 증득과 깨달음으로 업장이 소멸될 것이다.

업장이 소멸되면 어떤 일을 하든 즐겁게 할 수 있으며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사바세계에 살면서도 신선이나 부처의 경계처럼 될 것이다.

*보시고 내려놓기*

내려놓기는 단순히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죽음을 맞이할 때 정념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가족에 대한 의식이나 친척들의 사랑과 이별의 고통조차 느끼지 않아야 진정한 내려놓기가 이루어진다.

내려놓기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점차적으로 사물이나 물질 또는 감정에 대한 태도와 요구를 점점 더 희미하게 만들어 가야 하며,

그래야 진정으로 만연한 인연들을 내려놓게 된다.

만약 조금이라도 가족 의식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생사의 윤회일 뿐이다. 우리가 사바세계에 온 것은 업을 가지고 온 것이니 이 사바세계에서 청정한 문으로 들어가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해탈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더 이상 옷이나 음식 또는 거주와 이동의 편안함 때문에 새로운 악업을 쌓아 생사의 윤회의 옛길로 다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장수를 탐내지 말라! 만약 수행 방법을 모른다면 해탈의 길로 갈 수 없다면 아무리 200세까지 살아도 결국 악업만 쌓일 뿐이며 200세가 지나면 다시 생사의 윤회로 돌아간다.

우리의 몸은 태어나고 사라지는 존재이며 결국에는 파괴될 것이므로 영원히 의존할 수 없다; 이를 꿰뚫어 보고 내려놓아야 하며 우리의 영적인 본질만큼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참 자아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인간 몸을 얻었으니 이 인간 몸에 대해 소홀히 하지 말고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알아야 하니 성인이 되고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이 인간 몸으로 수행해야 한다; 만약 수행할 줄 모르면서


이 몸체의 옷이나 음식 또는 거주와 이동 등등 쾌락만 추구하며 끝없이 악업만 쌓는다면 삼악도나 사생 안에도 우리의 몫이 있으니,


따라서 이 인간 몸체는 실제로 전환점이며 인신재앙이라고도 할 수 있고 응재라고도 할 수 있으며 화재라고도 할 수 있다; 빚 갚음과 소망 실현 그리고 전환 및 상승이라는 과정을 통해 온 것이다!


by-봉황산맥 자황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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